| 2026년 2학기 전근대한일관계사 출석수업대체시험 핵심체크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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▶자료목차 및 주제
제4장 백제와 왜
제5장 무령왕과 성왕을 중심으로 본 대왜관계 * 각 장별 출제예상문제+해설포함* ▶자료내용 미리보기
제4장 백제와 왜
① 삼국 중에서 왜와 가장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였던 나라는 바로 백제이다. ② 4세기 중엽 근초고왕 대에 왜와 통교하기 시작한 백제는 이후 왕족외교를 전개하면서 지속적으로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였다. ③ 백제가 멸망한 이후에도 왜는 백제구원군을 파견하였으며, 또한 의자왕의 후손들은 일본열도에서 백제왕으로 남아 있었다. ④ 백제의 부흥이 불가능해지자, 백제왕씨라는 성으로 일본의 신료조직에 편입되었다. ⑤ 백제왕씨는 최고의 귀족 중 하나였으며, 천황의 후궁으로 들어가기도 하였다. 학습목표 1. 백제와 왜가 최초로 통교한 과정을 이해할 수 있다. 2. 백제의 왕족외교의 실상을 설명할 수 있다. 4.1. 백제와 왜의 통교 1. 칠지도 ① 백제와 왜의 통교를 상징하는 물품으로는 칠지도가 있다. ② 「고사기」에는 오진 천황 대에 백제왕 조고왕이 ‘횡도’를 바쳤다고 하였다. ③ 칠지도의 날이 옆으로 여섯 가닥이 뻗어 있어서 한 가닥으로 곧은 칼과 비교했을 때 옆으로 퍼진 칼이라는 횡도로 표현한 것도 무리는 아니다. ④ 「일본서기」에 364년 백제가 왜와 외교관계를 맺고자 한 이후 백제의 구저와 왜의 찌쿠마나가히코의 활약을 통하여 양국이 외교교섭을 시작하였으며, 최종적으로는 칠지도로 상징되는 바와 같이 372년에 공식적인 외교관계가 성립하였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. ⑤ 왜에 한정된 외교관계의 모색이 아니라 한반도중국일본열도 전체를 외교적 대상으로 파악하고, 외교방면에도 적극적인 노력을 경주하고 있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. ⑥ 대왜외교를 볼 때, 백제가 국가적으로 크게 성장하여 국가의식이 크게 고양되고 또 동아시아 전체의 정치군사적 구도를 이해하게 되면서, 주변국가들과 폭넓은 외교관계를 맺으려고 한 외교정책의 일환으로 파악해야 할 것이다. ⑦ 칠지도의 이면의 내용을 보면, ‘선세 이래로 아직 이러한 칼이 없었다’나 ‘후세에 전하라’ 등의 표현이 나타난다. ⑧ 칠지도의 명문을 통해서 백제가 왜에 대하여 문화적인 우위에 있다는 관념을 가지고 있었던 사실은 확인할 수 있으나, 그것이 곧 현실적인 외교과정에서 백제와 왜의 관계를 말해 주는 것은 아닐 것이다. ⑨ 칠지도는 대등한 관계에서 양국이 통교하게 된 기념물로서 백제가 제작하여 왜에 증여한 것으로 보는 것이 자연스럽다. ⑩ 칠지도는 양국의 통교를 기념하는 징표인 동시에 당시 백제가 보유하고 있던 선진물물의 상징물이었을 것이다. ⑪ 칠지도의 특이한 모양과 철 자체를 가공하는 기술, 철에 금을 새겨 넣는 기술(금상감기법), 또 금으로 새겨진 문자 그 자체가 그러한 상징물로서의 효과를 극대화하고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. ⑫ 칠지도는 다양한 철 제품을 생상할 수 있는 고도의 기술을 반영하는 동시에 거기에서 나아가 한 차원 높은 문화, 즉 한자 자체에 대한 지식을 비롯하여 한자를 매개로 해서 얻을 수 있는 각종 지식을 상징한다는 의미에서 더욱더 중요한 의미를 지녔다. 2. 아화왕의 대왜외교 ① 아화왕 6년에 일어난 사건이다. ② 고구려는 백제의 근초고왕이 고국원왕을 살해한 데 대한 보복으로 대대적인 백제 토벌을 계획하고 있었다. ③ 고구려는 신라를 우군으로 끌어들이고 백제를 고립시키기 위해 4년 전인 392년에 신라에 사신을 보내어 우호관계를 맺고, 백제에 대한 적극적인 공세를 취하였다. ④ 백제의 아화왕은 396년 광개토왕의 대대적인 공세에 직면하게 되었는데, 이 절박한 상황에서 397년에 태자 전지를 왜국에 파견하여 군사외교를 전개하여 신라를 견제하고, 고구려에 대항하려 한 것으로 보인다. ⑤ 고구려와 동맹관계를 맺고 있던 신라에도 왜가 공격한 흔적을 찾을 수 있다. - 중략 - |